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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은 진화한다    
글쓴이 : 정민영    14-10-29 09:21    조회 : 10,330

 팔월의 여름은 너무 뜨겁다. 하늘을 올려다볼 수 없을 만큼 강열한 태양이 온 대지를 팔팔 끓이고 있다.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서 아이와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늘막이 없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의 이마에 이슬 같은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타고 갈까?’ 하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가 올 텐데 왜 비싼 택시를 타려 하느냐고 반문을 하는 것이다. 순간 멈칫했다. 저 어린 가슴에도 생각이 들어있었구나.

 그 일은 나와 아이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를 훈육하고자 장롱 위에 두었던 회초리를 치웠다. 아내를 불러 앞에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는 아이가 잘못할 때 회초리 대신 말로 설득할 것을 주문했다. 아내는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보면서 어떻게 매 없이 아이를 가르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나는 아내에게 힘이 들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보자고 제안했다. 아내는 몇 번 시도하다가 아이를 가르치는 일을 포기했고 아이의 훈육은 나의 몫이 되었다. 매를 들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도 아이에게 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든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꼬맹이에게 의견을 묻고 이런저런 생각을 교환하며 의사를 결정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어쩌면 내가 말이 많은 것도 그때 아이를 가르치면서 생긴 버릇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여느 엄마처럼 아들의 장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원에 다닐 것을 요구했고 아이는 엄마의 뜻에 반기를 들었다. 아내는 어떻게 좀 해보라며 나를 채근했지만 나는 어릴 때 나에게 깨우침을 일으켰던 아이의 생각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아이가 선택할 문제라며 외면했다. 아내는 울화병이 돋는지 매사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화목하던 가정이 모자간의 갈등으로 불화의 불씨가 싹을 틔우고 점점 성장하며 집안에 냉기를 불러일으켰다. 그대로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아내와 나, 아들, 유치원생인 막내딸 이렇게 넷이서 아들의 학원문제를 다수결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투표에 들어가기 전에 아내와 아들에게 각각 자신의 주장이 타당한 이유를 설명하도록 했다. 아내는 짜증스런 얼굴로 부모가 되어가지고 자식 잘 키우려고 하는 것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겠느냐며 화를 냈다. 아이는 진지하게 답했다. 지금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투표를 했다. 아이와 아내는 각각 자신의 뜻을 이미 나타냈으므로 의사결정은 나와 딸의 몫이 되었다. 입장이 곤란해진 딸은 자기가 뭘 알겠냐며 기권을 했다. 결정권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는 엄마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조건부로 아이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내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아이는 조건을 수용했다. 아들이 장성해서 자신을 잘못 키웠다고 아빠를 탓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 아이는 말에 책임을 지려는 듯 비교적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아들은 수학 과외선생과 단과 반 등록을 원했다. 아이가 원하는 학원에 등록을 해주고 과외선생을 일주일에 두 번씩 집으로 오게 하였다. 그때부터 아내는 아들에게 ‘SKY’를 주입시켰다. 아이의 학교는 용산이고 나의 사무실은 종로다. 집은 신길동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아이의 등교를 돕게 되었다. 집에서 학교까지 40분쯤 소요되는 등교시간의 승용차 안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우리들만의 공간이었다.

 그 좁은 공간은 아이가 피곤할 때는 요람처럼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는 침실이기도 했고, 삶의 문제를 논할 때는 고민상담소가 되기도 했으며,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하는 철학의 강론장이 되기도 했다. 우린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깊게 논의 된 것은 대학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대학이 삶의 목표가 아닌 과정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바람대로 명문대학에 진학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는 합당한 준비를 하였는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학창시절에만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을 포기하고 도전할 가치가 있는지 등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 우리는 삶은 진행형이고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들은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주지는 못했지만 여행과 독서, 활발한 교우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대학에 합격하던 날, 아이에게 지금부터 아빠는 너의 조언자의 역할만 하겠다고 말했다.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의 뜻을 받아드렸을 때 조금은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짐을 하나 벗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자의 몫으로 살았다. 몇 번의 조언으로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였다. 독립을 하겠다며 출퇴근이 용이한 곳에 오피스텔을 구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을 방문하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직장생활의 경험담, 결혼에 대한 생각 등을 털어놨다. 그리고 서른 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였다.

 젊은이들이 자녀교육의 부담으로 결혼을 미루고 결혼을 하더라도 자녀 갖기를 꺼려하는 요즘 세태에서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결혼에 대해 토론하면서 종족보존이라는 거대 담론이 아닌 조그만 삶을 주제로 삼았다. 내가 너를 낳게 된 것은 아버지가 되어보고 싶었다는 것과 아버지가 되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뜻이었다는 나의 생각을 밝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도 견뎌낼 수 있다는 부모의 마음을 경험하지 못하면서 어찌 사랑과 아픔을 논할 수 있겠냐는 말도 덧붙였다. 아들은 나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품을 떠나게 되자 부모와 자녀 관계에 대하여 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가하고 자문하는데 묘한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까지는 자녀의 성공을 통해 기쁨을 얻으려는 소망이 컸었다. 아이를 품에서 떠나보내고 난 후 난 자녀는 부모의 대리인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서 자녀의 성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지켜봐주는 자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생각은 대학생이 된 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그때까지는 딸이라는 이유로 감시/감독을 강화하고 품안에서 키우려고 했었다. 딸이 원하는 대로 학교 근처에 원룸 형 아파트를 얻어줬다. 스무 살이 넘었으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만큼 성장했다고 믿고 싶었다. 

아이들이 다 떠나고 부부만 사는 집은 여름날 무성하던 이파리들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나무처럼 쓸쓸한 모양새다. 부모로서의 의무를 다 했다고 생각되자 아내가 보였다. 꽃처럼 아름답던 이십 대에 만나 30년 넘게 살았지만 즐거움보다는 아픈 추억을 더 많이 안겨준 여인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기도 전에 이별을 맞이한다면 고독한 삶에 회한의 고통이 더해질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나에게는 아내와 아름다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분의 삶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지금부터는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바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돌려주려고 한다.

 바다는 운명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돌 무렵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나의 모습을 보고 할머니는 나를 ‘거북이’라고 불렀고, 그 애칭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나의 이름이 되었다. 산골에서 태어난 나는 바다를 본 적이 없지만 ‘거북’이 살고 있다는 바다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

 첫 직장에서 국가하천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우연하게도 항만계획을 수립하는 업무가 우리부서에 배정되었다. 부서장은 나를 업무 담당자로 지정했다. 그 부서에 내가 있었고 그 시기에 부서 고유 업무도 아닌 항만계획 업무가 우리부서에 배정된 것은 나의 운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인연으로 항만분야 엔지니어가 되었다.

 30여 년을 넘게 동해, 서해, 남해와 멀리 제주도까지 바다를 찾아다녔다. 나의 밥줄이 되어준 그 바다는 언제나 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이방인처럼 낯설기도 하다. 다른 이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찾는 바다를 무시로 접할 수 있으니 참 좋은 직업을 가졌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음직하다. 하지만 해답을 내놓지 않는 바다는 말썽꾸러기 자식처럼 골치를 지끈지끈 아프게 하기도 한다. 초겨울의 스산한 날씨에 혼자 객주에 앉아 밥상을 마주할 때는 밥알이 넘어가지 않아 숟가락을 놓고 막걸리 한 사발로 저녁을 가름해야하는 외로움은 오래된 친구가 되었다.

 누구에게나 ‘바다’는 언제라도 가고 싶은, 추억이 살아있는 장소다. 우리는 바다에 대한 추억 한 두 가지는 가슴에 묻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바다로 인해 의식주를 해결하였고 그로 인해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며 풍족한 삶을 누렸다. 바다가 말을 걸어왔다. 난 너에게 나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었는데 넌 나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

 난 무엇을 했을까?

 이제는 그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


임정화   14-10-30 11:11
    
안녕하세요, 정민영 선생님.
선생님의 성품과 아드님의 진중함이 엿보이는 글이네요.
부부간에 마찰이 생기더라도 어떻게든 가족성원 모두에게 자신의 생각만을 강요하려는 잘못을 범치 않으려고 경계하고 노력하신 모습이 아주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제목이 드러내듯 생각이 어떤 계기로 어떻게 변해가는지 서술하려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과정을 기술하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크게 위기를 겪거나 난관을 극복하는 굴곡 없이 비교적 평이한 가족의 역사가 병렬적으로 이어져서 독자로 하여금 집중을 조금 흐트러뜨리는 면이 없지 않은데요. 게다가 사용하시는 단어들이 쉬운 우리말보다는 한자어가 주를 이루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맛이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연 '생각의 진화'가 이 글의 내용과 맞아떨어지는지도 저는 좀 의문인데요. 서두의 사건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신중하고 현명한 생각을 갖고 계셨고 다만 생각의 성질이나 생각을 일으키는 대상이 조금씩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입니다. 물론 이건 일개 독자가 가지는 이해의 차원이니 한번 더 재고하는 차원에서만 다루셔도 될 문제겠고요.
나는 어떠했을까, 되짚어보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정민영   14-10-30 21:52
    
좋은 지도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글의 내용에 비해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목을 '소소한 이야기' 정도로 바꿀려고 합니다.
또한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요즈음에는 잘 쓰지 않는 한자어가 군데군데 있어서 의미의 단절을
가져올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즈음 언어로 다시 수정을 해야겠네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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