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겨울 오후, 겨울나무의 가느다란 가지들이 햇살사이로 다가왔다. 여름에 무성했던 이파리들이 저렇게 가느다란 가지에 달려있었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겨울나무를 보면 외롭고 쓸쓸하다는 느낌을 가졌었다.
하지만 무성한 이파리들을 달고서 여름날의 비바람과 폭풍우를 견뎌낸 여린 나뭇가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거운 짐을 벗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고요히 있는 겨울나무의 모습이 한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그 나뭇가지들을 바라보다가 나무의 한 해는 사람의 일생과 같다는 생각이 일었다. 봄에 싹을 내고 여름의 태양아래서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가을이 되면 나뭇잎을 대지로 보내고 홀로 남는다.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결혼을 시키면 노년의 인생이 남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나무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햇살사이로 나를 찾아왔을까? 노년의 삶은 다 내려놓음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 내려놓음은 쓸쓸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또한 짐을 벗고 자유로울 수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노년의 준비는 익숙한 것들을 하나씩 내려놓음에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유수 같다더니만 60평생이 한 순간에 지나가버렸음을 느낀다. 나의 삶이 힘들었다는 생각을 종종 하였지만, 그러한 고난들은 나뭇가지가 견뎌냈을 힘겨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무는 그 힘겨움을 견뎌낸 후의 평화로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 주면서 노년의 삶을 준비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나뭇가지의 평화로움을 보고 나서 삶을 대하는 방향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전에는 꼭 무슨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은 매일의 아침을 감사하게 맞으며 나에게 주어진 과제를 무리 없이 수행하는데 방점을 찍는다.
60이 넘어서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사람들은 부럽다고 한다. 정작 나는 무엇이 부러운 일인지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40넘어 낳은 늦둥이가 아직 대학생이기 때문에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직장생활을 계속해야 하지만 30년 넘게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차리는 아내 보기가 미안해서 아침을 먹지 않고 버텨보기로 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아침을 먹지 않고도 일상을 소화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아침밥을 먹지 않는 것은 아내의 사랑을 내려놓음이다.
노년의 삶을 위한 준비로 아침밥을 놓은 후 또 무엇을 놓을까를 고민했다. 자녀걱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큰 애는 결혼을 하여 분가를 하였고, 작은 애는 학교 근처에 원룸형 아파트를 얻어서 자취를 하고 있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자녀들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기가 일쑤다. 이제부터는 다 내려놓고 고독과 쓸쓸함을 견디는 연습을 해야겠다.
부부만 사는 집은 무성하던 이파리를 떼어낸 나뭇가지처럼 쓸쓸한 모양새다. 여기에 더하여 한쪽이 먼저 간다면 정말 고독이 밀려올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나뭇가지를 보면서 느꼈던 노년의 삶은 쓸쓸함과 고독을 견뎌내야 할 것 같다. 그 속에서 평화로움을 갖는 것이 노년의 삶이 되어야 함을 겨울나무를 통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