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나라는 다자녀 갖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80년 대 초반에 결혼한 나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당시에는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란 구호가 선거철에 후보자들이 내거는 선거공약만큼이나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심지어는 세 자녀의 경우, 셋째 자녀는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되는 웃지 못할 규제도 등장했었다. 그때 결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 자녀를 두었다. 자녀교육비가 큰 부담으로 작용하였던 것도 한 자녀 두기에 한몫을 했다.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고 한 자녀로는 안 되겠다싶어 10여년의 터울로 둘째를 낳은 가정이 부지기수다. 나도 그런 부모의 한 사람이다.
큰 애를 키울 때는 초보 아빠로서 아이를 잘 돌볼 수 있는 지혜가 없었다. 오직 벤저민 스포크 박사의 육아 책이 할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동생을 간절히 원했다. 그 간절함으로 천사 같은 공주가 나의 가족이 되었다. 둘째에게는 좋은 아빠노릇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삶은 공주와 함께 할 시간을 충분히 허락하지 않았다. 좋은 아빠가 될 기회도 없이 아이들은 스스로 성인이 되었다.
순간순간은 나름대로 자녀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여겼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좀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를 덧없이 스쳐 보냈다는 후회를 한다. 아쉬움이 크지만 다 지난 시간들이다. 성인이 된 자녀들에게 부모노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을 해 본다. 나는 성인이 되었을 때, 부모님이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만을 바랐었던 것 같다. 나의 아이들도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를 자문하면 확신을 갖기가 어렵다.
더없이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에머랄드 빛 하늘바다가 품고 있는 양털구름의 포근함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날아본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아버지는 될 수 있을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지혜를 줄 수 있을까? 돈 많은 지혜로운 부모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털구름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아무 것도 자신이 없다. 한 가지라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면 좋겠다.
머리에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고 며칠을 보냈다. 이른 새벽, 반의식상태에서 문득 나와 자녀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영상이 나타났다. 환각인가? 하는 생각을 할 여유도 주지 않고 영화처럼 영상들이 머릿속에 스크린을 만들었다. 묘하게도 나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고 자녀의 시간은 나의 시간 축을 따라 점점 다가오더니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 영상은 나의 물음에 답을 주었다. 부모는 자녀가 부모의 품을 스스로 떠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그 자체가 부모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나의 자녀가 나의 품을 떠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부모의 품을 부모의 정원이라고 부르고 싶다. 자녀가 나의 품을 떠날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나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꿔가야겠다. 아이들은 나의 정원에서 세상의 희?노?애?락을 되새김하고, 세상살이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세상살이가 힘들거나, 지칠 때면 예고 없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세상 속으로 다시 뛰어들 수 있는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정원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부터는 나의 정원을 잘 가꾸어야겠다.
나의 정원을 어떻게 구성하고 각 정원에는 무엇을 심고 가꿀까를 생각해 보았다. 정원은 동그란 모양의 4개의 작은 정원으로 나누어 입구에서부터 일상의 정원, 관계의 정원, 사색의 정원을 원형으로 조성하고 세 개의 정원 중앙에는 각각의 정원을 연결하는 통로를 겸한 통섭의 정원을 만들고자 한다.
일상의 정원은 아이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맛있는 음식과 조용히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턴테이블을 비치할 것이다. 이곳에서 아이가 일어버린 열정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원 곳곳에 근면과 정직과 성실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일상의 정원에서 지내는 동안 아이가 근면하고 정직하며 성실했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관계의 정원은 아이가 세상살이에서 사람과의 만남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찾게 될 것이다. 이곳에서 머무는 동안 살아가면서 조우하게 될 다양한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했으면 좋겠다. 이곳에는 아이가 겸손하며 사려 깊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겸손과 배려와 사랑의 나무를 심을 것이다.
사색의 정원은 다른 정원과는 달리 좀 특별한 공간으로 꾸미고 싶다. 아무런 나무도 심지 않고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편히 앉을 수 있는 의자 하나만을 둘 것이다. 아이가 더욱 성장하여 세상을 전전하다가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되어 이곳을 찾게 되면, 이곳에서 아이가 묵상을 통하여 하늘과 땅 그리고 자신이 하나가 되어 영혼의 무한함을 느낄 수 있고, 삶이 곧 기적이라는 의미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중앙에 위치한 통섭의 정원에는 일상의 정원, 관계의 정원, 사색의 정원으로 연결되는 좁고 신비감이 느껴지는 오솔길을 만들겠다. 정원의 곳곳에는 고통, 슬픔, 분노, 안타까움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고 중앙에는 느티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 아이는 정원을 찾을 때마다, 아름드리 고목이 된 느티나무가 만들어 낸 그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는 습관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는 하늘을 무심코 올려다보다가 나뭇가지 사이로 다가오는 햇살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그때 그 햇살이 지나온 틈새를 통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느티나무의 여린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있고 그 여린 가지에 촘촘히 매달려 흔들거리는 파란 나뭇잎을 발견하고는 맑은 미소를 머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