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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도 자란다    
글쓴이 : 정민영    13-12-17 14:17    조회 : 9,372
 팔월의 여름은 너무 뜨겁다.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늘막이 없다. 뜨거운 태양 아래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는 것을 보면서 아이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타고 갈까하고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조금만 기다리면 버스가 올 텐데 왜 비싼 택시를 타려고 하느냐고 나에게 반문을 하는 것이다. 순간 멈칫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저 조그만 가슴에도 생각이 들어있었구나, 철없는 아이로만 치부하고 살아온 삶이 갑자기 부끄럽게 다가왔다.
 그 일은 아이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큰 사건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와 관계되는 일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아이에게 의견을 묻게 되었다. 꼬맹이에게 의견을 묻고 이런저런 생각을 교환하며 의사를 결정하는 나를 아내는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며 놀려댔다. 
 아이는 시간의 속도보다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는가 싶더니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아내는 여느 엄마처럼 아들의 장래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학원에 다닐 것을 요구했고 아이는 엄마의 뜻에 반기를 들었다. 화목하던 가정이 모자간의 갈등으로 불화의 불씨가 싹을 틔울 무렵에 내가 나섰다.
 아들에게 학원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를 묻고, 아내에게는 학원에 보내려는 이유를 물었다. 나의 질문에 아내는 짜증으로 답했고, 아이는 진지하게 답했다. 지금은 학원에 가지 않아도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수결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때는 엄마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조건부로 아이의 편을 들어주었다. 아내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아이는 조건을 흔쾌히 수용했다. 아들의 학업성적으로 인해 아내와 사소한 마찰은 있었지만 아들은 그런대로 우수한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학기가 지나자 아들은 수학 과외선생과 단과 반 등록을 원했다. 아이가 원하는 학원에 등록을 해주고 과외선생을 붙여주었다. 그때부터 아내는 아들에게 SKY를 주입시켰다. 아이가 고2가 되었을 때, 아이가 다니는 학교 근처로 내가 다니던 직장의 사옥이 이전되었다. 자연스럽게 등교는 아빠 몫이 되었다. 40분쯤 소요되는 등교시간은 매일 아침 우리에게 주어진 의미있는 공간이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우린 삶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깊게 논의 된 것은 대학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대학이 삶의 목표가 아닌 삶의 과정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수한 두뇌로 명문대학에 진학하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것을 이루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꼭 경험하고 느껴야 할 많은 것들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에 동의하였고, 삶의 과정으로 대학생활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다. 그 결과 아들은 엄마의 소원을 이루어주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꿈꾸어 왔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합격하던 날 아이는 나에게 지금부터 아빠는 조언자의 역할만 하라고 말했다. 아들의 갑작스런 제안에 조금은 당황스럽고 섭섭한 감정도 있었지만 짐을 하나 벗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각자의 몫으로 살았다. 몇 번의 조언을 했을뿐인데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자기가 원하는 직장에 취업을 하였다. 취업 후에는 오피스텔을 얻어 따로 살았기 때문에 아들과 별로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다만 한 달에 한 번 꼴로 집을 방문하면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직장생활의 애환이나 느낀 점, 결혼에 대한 생각 등을 교환했다. 그리고 서른 살인 올해 결혼을 하였다.
 따로 나가서 살았던 아들이 결혼을 하자 자식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혼자 살던 때에는 이런저런 근심걱정이 있었는데 결혼을 하고 분가를 한 후에는 자식에 대한 생각을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한 사람의 완전한 독립인격으로 내 마음에 자리매김을 하였다.
 아들이 결혼을 하고 나의 품을 떠나게 되자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생각을 하게 된다. 자녀는 부모에게 어떤 존재인가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묘한 생각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제까지는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돌보는 것이고, 자녀의 성공을 통해 기쁨을 얻으려는 생각이 컸었다. 그게 아니었다. 부모는 자녀의 생각을 읽고 자녀가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생각으로 자녀를 키우고자 할 때 일어나는 많은 갈등을 우리는 무시로 접하고 있지 않는가.

김선봉   13-12-18 16:20
    
좋은 내용이네요.
사람은 외적으로도 성장하고, 내적으로도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다만 내적인 성장은 눈에 안보이니 무시하는 경우가 많지요.
정민영   13-12-19 09:38
    
반갑습니다.
    글은 마음을 치유한다고 해서 가끔 글쓰기를 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임정화   13-12-20 10:03
    
정민영 선생님, 삶의 철학이 묻어난 글 잘 읽었습니다.
찬찬히 속도를 조절하며 써내려간 글이라 읽고 이해하기에 아주 수월했습니다.
다만 아내분께서는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가 궁금하네요.
자식들을 키울 때도 마찬가지이지만 결혼을 시킨 후에도 어머니의 마음은
아버지와는 좀 다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물론 그 내용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훌륭한 글입니다만, 어머니들도 깊이 공감할 수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선생님이 쓰신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건필하세요.^^
정민영   13-12-20 14:39
    
저의 글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는 참 힘들어했지요. 특히 아내 친구의 자녀가 명문대에 진학했을때는
    가슴앓이를 심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가는 것과 항상 엄마와 친구처럼 대하는 아들을 보면서
    치유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의 결혼 날을 잡고부터 잠을 못이루는
    아내를 보면서 세상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쏟는 사랑의 크기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는 아내와 오손도손 정답게 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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